국물맛 계속해서 얼큰해도 괜챦겠습니까?
라면을 즐기는 사람이거나 즐기지 않는 사람이거나 라면에 대한 건강학적 평가는 좋지 않다. 라면의 본 고장, 일본에서도 라면은 ‘식품업계가 낳은 20세기 최대의 걸작’이자 ‘21세기에는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식품’이라고 언급된다(<어린이를 위한 올바른 식생활>(일본 건강 저널리스트 이마무라 고이치 저)).
그럼에도 우리나라 라면 소비량은 세계적 수준이다. 세계라면협회(IRMA)에 따르면, 해마다 전 세계에서 팔려 나가는 라면은 약 5백50억 개. 이 중 한국은 중국(1백50억개), 일본( 54억개), 인도네시아(62억개)에 이어 38억개, 4위다. 그러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84개로 중국(15개), 일본(40개)보다 월등히 높다. 라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모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대표적 가치주로 뽑히는 것도 ‘라면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광적 지지’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라면의 대중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논란은 끊이질 않는다. 거슬러 올라가면 1989년, 라면을 튀겨내는 기름으로 미국산 공업용 우지를 사용한 삼앙라면은 이 때문에 라면 시장 부동의 1위 자리를 내어줌은 물론 끝없는 추락을 맞보아야 했다. 또 2005년 6월에는 영국 식품표준청(FSA)이 한국산 농심, 라면·스낵류 20여 종에 ‘식품 경보(Food Alert)’를 발령하는 사태도 빚어졌다. 이 회사가 방사선을 쬔 원료를 제품에 사용하고도 이를 포장지에 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논란은 ‘나라별로 식품 안전 기준이 다르다’는 애매한 결론으로 일단락되었지만, 라면의 안전성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숙제를 남겨 놓았다.
라면의 문제점 중 하나는 영양 불균형이다. 라면 100g에 들어있는 열량은 422kcal 내외인데, 이 중 탄수화물은 65g, 단백질은 9g, 지방은 14g이다.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기기에 단백질이 부족한 것이다. 기름 논란도 끊이질 않는다. 언급한 우지 파동 이후 기업들은 라면용 튀김 기름을 식물성 ‘팜유’로 교체했지만, 비판론자들은 팜유도 몸에 해로운 포화 지방산을 50% 가량 함유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라면 회사들은 팜유야말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안전한 기름 중 하나라고 맞대응한다. 이밖에 1회용 용기의 환경 호르몬 문제, 화학조미료로 표시된, 혹은 표시도 안 된 식품 첨가물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그러나 가장 큰 아쉬움은 나트륨의 과다 함유다. 최근 서울환경연합이 국산 라면에 나트륨이 과다하게 함유되어 있다고 밝힌 자료에 따르면, 국산 라면 1개당 나트륨 평균 함량은 2,075mg으로 우리나라 1일 나트륨 섭취 기준치(3,500mg)의 59%에 해당한다. 소금 과다 섭취는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등 성인병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 현재 면 스프의 30~40%는 짠맛을 내는 성분이다. 물론 이는 짜고 얼큰한 맛을 선호하는 우리 국민들의 입맛과 관련이 있지만, 관련 업체들도 나트륨 과잉을 공감하여 그 함량을 점진적으로 줄여가고 포장지에 경고 문구를 넣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단, 나트륨과 MSG(화학조미료의 일종)가 라면 맛을 좌우하는 양대 축이라 이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라면도 웰빙 바람을 타고 진화한다. 풀무원은 2005년 가을, 기름에 튀기지 않고 화학조미료를 첨가하지 않은 생라면 시장에 진출했다. 사실 풀무원은 1995년, 일찌감치 생라면 시장을 열어 실패를 맛보았으나, 이제 시장 환경이 충분히 조성되었다고 판단해 재런칭한 경우다. 한국야쿠르트는 된장을 수프 주재료로 사용한 라면을 개발해 매운맛 라면과의 차별화에 나섰다. 선두업체인 농심과 삼양식품의 경우, 농심은 2010년까지 MSG 무첨가 제품을 농심 라면 전체의 30% 이상으로 높일 계획이며, 삼양식품은 식약 원료 70여 가지를 포함한 프리미엄 라면을 선보였다. 이밖에도 유기농 식품업체들을 중심으로 라면의 주재료인 밀가루 대신 현미, 감자, 상황버섯, 콩 등을 이용한 이른바 '웰빙라면'들이 출시된다. 프리미엄급 라면 시장 규모는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프리미엄급 라면의 소비가 확장되는 것이 건강을 위한 보다 합리적 선택으로 인정할 만하지만, 일단 기존 라면을 섭취할 경우, 번거롭더라도 라면을 끓인 후 물을 완전히 버리고 다시 물을 끓여 조리해 산화방지제와 착색제 같은 유해 성분을 줄이는 것이 좋다. 용기 제품의 라면은 되도록 피하고, 우리 밀을 원료로 한 라면을 선택하는 배려도 필요하다. 유통 과정상, 농약, 방부제 등 화학 물질이 많이 투입되어야 하는 수입 밀가루보다는 우리 밀이 친환경적이기 때문이다.